자연과 세월, 전통의 숨결 살려내는 도마 장인(匠人)
자연과 세월, 전통의 숨결 살려내는 도마 장인(匠人)
  • 장두선 기자
  • 승인 2018.12.05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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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느티나무 수제 명품 지영흥안동도마

양반의 고장인 경북 안동에서 30년간 국내 유일의 수제 명품도마를 만들어 왔다는 지영흥 장인(匠人). 그의 작업 장소인 ‘지영흥안동도마’ 마당은 각양각색의 느티나무로 가득하다. 지영흥 장인이 북쪽 강원도에서 남쪽 해남까지 돌아다니며 어렵게 모았다는 느티나무는, 저마다 지내 온 세월과 사연을 담은 듯한 기품 있는 빛깔과 나이테를 담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서민은 생전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로 만든 가구를 놓고 소나무로 된 기구를 쓰다가 죽어서도 소나무 관 속에 묻히지만 양반은 느티나무로 지은 집에서 느티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 느티나무 관에 실려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느티나무 목재는 우리나라 제일로 친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00년 이상 수령의 고사목(枯死木) 수집하는 ‘나무선생’

지영흥 대표
지영흥 대표

느티나무의 목재 가치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 무분별한 벌목으로 느티나무를 구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쉽지 않다. 전국 지자체에서 수백 년 된 느티나무를 보호 수종으로 지정해 놓았다. 원목 가격이 높아진 데다 구입하더라도 5년 이상의 자연건조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이제 많은 전문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느티나무를 포기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일본산 수입 원목이나 목재 가치가 낮은 개량종, 개느티나무 혹은 정상적인 건조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나 수령이 얼마 되지 않은 나무로 만든 도마들이 양산되고 있다. 세라믹이니 하는 신소재로 만든 도마도 젊은 층의 가정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유통된다.

그럼에도 그가 느티나무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수천 종류의 나무 중에서 문양, 색깔, 모양, 질감 등 도마의 모든 조건을 갖춘 느티나무를 따라올 나무는 없기 때문이다. 못도 잘 안 들어간다는 토종 느티나무는 단단하고 질기며, 물기가 쉽게 제거되어 빠르게 건조 되는 최상의 재료다. 칼자국이 잘 남지 않기 때문에 이물질이나 세균의 침투를 예방하고, 곰팡이도 잘 끼지 않으며 무엇보다 독성이 없고 짙은 붉은 색에 화려한 자연 문양이 더해진 아름다움은 어느 것에도 비할 데가 없다.

지영흥 장인은 ‘나무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30년 전부터 전국의 산을 다니며 숨어 있는 목상들과 맺은 인연을 자신이 만드는 도마만큼이나 소중히 이어오고 있다. 오랜 기다림이 요구되는 자연 건조의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보낸 세월이 오늘날 그의 도마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원목의 수집 통로 확보, 원목의 선별, 자연건조과정과 도마제작까지 장인만의 오랜 노하우가 국내 유일의 수제 명품도마라는 명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름다운 도마로 다시 태어나는 느티나무

“그저 나무만 바라 봐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무와 함께하다 도마와 인연을 맺은 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유구한 세월과 집념의 장인 정신이 녹아 있는 지영흥 장인의 명품 도마는 하루 30개 만들기도 쉽지가 않다. 스스로 ‘나무 귀신이 붙었다.’고 말할 만큼 나무를 사랑했고, 그래서 나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는 그는 어느 작업 공정 하나도 쉽게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그는 100년 이상 된 토종 느티나무가 자연 속에서 말라죽은 고사목을 수집한다. 적어도 5년 이상 길게는 10년 동안 자연건조를 거친다. 작업장에 쌓인 나무들은 일반 나무보다 5배 이상의 가격을 호가한다니 시가만 해도 수억 원이다. 우선 사방이 트인 볕 좋은 곳에서 2년 이상 자연 건조하는데, 사시사철 눈과 비를 맞고 차가운 서리를 견디며 다시 태어날 첫 번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많이 버려진다. 그리고 건조된 나무를 켠다. 나무를 재단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썩고 비틀린 나무는 다시 정리가 된다. 재단된 나무는 수평을 잡고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껍질을 벗겨 다시 3년 정도를 자연 건조한다. 이 과정에서 또 40%가 폐기처분된다. 자연 속에서 혹독한 건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나무라야 도마로 만들어진 뒤에도 무수한 물질과 칼질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마루에서 건조중인 도마
마루에서 건조중인 도마

이제는 밀도도 뛰어나고 나무 본래의 습성이 그대로인 나무들만이 남아 있다. 이 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낸다. 트거나 갈라진 부분은 또 잘려 나간다. 아무리 잘 살려도 나무의 60% 이상 남기기 어렵다. 이걸 타원형으로 둥글게 잘라 나무 고유의 무늬를 도마 한가운데 남긴다. ‘실(實)’과 ‘미(美)’를 동시에 살려내는 장인정신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결의 모양에 맞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기계로 수평을 잡는다. 사포를 이용해 갈고 닦기를 반복하면 나무결이 선명해지고 모서리 곡선이 살아난다. 여기에 정통 방식으로 들기름을 바른다. 막이 생겨 불순물이 잘 묻지 않도록. 이 과정에서 조직이 단단한 느티나무는 들기름을 머금고 고운 빛깔이 배로 살아난다. 그러고 보니 지영흥 장인이 도마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차라리 죽었던 느티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고 전국 각지에서 그의 도마를 사러 오는 사람이 마당에서 집 앞 골목까지 줄을 이어도, 그의 삶은 변화가 없다. 도마 하나 때문에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마음뿐이다. 그의 고사목 도마는 특대부터 대·중·소 사이즈에 판매된다. 그렇게 어느 가정으로 전해진 도마는 또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느 어머니의, 아내의 정성어린 칼질을 감당하며 한 가족 한 가족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도마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이 쉽게 휴식을 구할 수 없는 것은 그 아름다운 꿈이 계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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