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시간, 삶을 간직한 장인(匠人)의 도마
자연, 시간, 삶을 간직한 장인(匠人)의 도마
  • 장두선 기자
  • 승인 2019.04.22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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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으로 수제작만 고집하는, 지영흥 안동도마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장인이 정성을 다해 만든 붓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요리에 있어 도마는 서화 예술의 세계의 ‘붓’과 다름없을 것이다. 만드는 시간은 고작 수 일에서 수개월이지만 수백 년 세월을 살아온 느티나무를 찾아내는 정성이 더해진다. 지영흥 안동도마의 가치는 명품 도마를 찾아 전국을 달려와 그의 집 마당 앞에 줄 서 기다리는 고객들이 증명하지만, 주말에도 쉼 없이 만들어져 마당에 가지런히 세워지는 도마, 그에 담긴 각기 다른 정성에 그 진실이 숨어 있다.

500년 수령 고사목의 인내를 간직한 도마

그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멀든 가깝든 그를 찾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도마를 건네고 싶다. 그래서 지영흥 장인은 주말에도 쉼 없이 한시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다. 손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손바닥의 굳은살은 그의 손의 일부가 됐다. 도마의 재료가 되는 나무만큼이나 풍파를 겪은 손이다. 오랜 양반의 고장 안동의 문화도 담겼다. 좋은 가문의 좋은 집을 만드는 나무가 많은 지역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도 오래된 느티나무로 만들어졌다. 유산이 사라지고는 있지만, 정신이 남아 있다. 그가 만든 도마는 세계 명품 주방 브랜드들이 하나둘 국내에 소개되며 인기를 끄는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는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는 목상(木商)들 사이에서 ‘도마 선생’도 아닌 ‘나무 선생’으로 불린다. 나무가 도마의 생명이니 그럴 만도 하다. 30년 넘게 전국의 산을 다니며 숨어 있는 목상들과 인연을 맺고 선별된 느티나무를 수집해 온 그다. 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나무에 대한 공부가 아닌, 나무와의 소통을 통해 체득되었다. 그는 100년 이상 된 토종 느티나무의 고사목(枯死木)만을 수집한다. 살아 있는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말라죽은 고사목을 구하는 것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고사목의 가치는 대단하다. 느티나무는 수백 년 간 자라면서 외부 환경에서 견디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응축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이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하고 질기다. 그러니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 수천 번 타격을 가해도 자연에서 다진 우직함으로 식재료의 본질을 지킨다. 세균의 번식과 침투는 느티나무가 견딘 수백 년 세월에 대적할 것이 못된다.

“나무만 바라봐도 좋다!” 도마 장인의 나무 사랑

지영흥안동도마 지영흥 장인
지영흥안동도마 지영흥 장인

지영흥 장인은 10년 이상 자연건조를 거친 최상급의 나무들만 선택한다. 그리고 5년을 더 말린다. 질 나쁜 것은 가차 없이 버린다. 살아서 수백 년, 죽어서 십수 년 수도 없이 해를 만나고 비를 견뎌내는 것이다. 그 나무에는 자연의 좋은 것만 남을 수밖에 없다. 나무가 숙성되는 시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의 손은 더욱 빠르고 능숙하다. 원목을 잡으면, 어떻게 깎을지 그새 감이 온다. 밑그림 없이 단 몇 분 만에 나뭇결을 살려 낸 도마를 깎아 낸다. 손을 적게 댈수록 도마는 더욱 견고하고 아름답다. 오래고 정성된 기다림의 대가다. 그렇다 해도 원목 수집부터 선별, 건조, 제작과 마무리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 서른 개 만드는 게 고작이다.

그의 도마는 매스컴에도 자주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생활은 지금도 같다.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더더욱 기계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도마를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먼 길을 와 그의 마당에 줄을 선다. 나이테가 용의 모습과 흡사한 ‘용목’은 용의 기운이 집안에 함께 하고, 속이 붉은 ‘홍목’은 강대함과 희망, 부귀함을 부른다. 속이 검은 ‘목귀목’은 승진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골라 간다.

지영흥 대표는 “그저 나무만 바라봐도 좋다.”라고 한다. 그렇게 나무를 만나고 도마로 깎아내며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어느 가정으로 전해진 도마는 또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느 어머니의, 아내의 정성어린 칼질을 감당하며 자신이 인연을 맺은 가정의 또 다른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도마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이 쉽게 휴식을 구할 수 없는 것은 그 아름다운 꿈이 계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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